Этническая идентичность корейской диаспоры через устную историю жизни пожилого корейц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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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 статье затрагиваются некоторые аспекты этнической идентичности корейской диаспоры на примере устного опроса и интервью информанта-корейца, живущего в Улан-Удэ. Устная история информанта просматривается через призму его адаптации к российскому сообществу на основе анализа его родословной, истории жизни его предков и потомков, населяющих Бурятию, а также перспектив дальнейшего развития этнической идентичности корейской диаспоры в России. Очень интересным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феномен отказа от традиционных корейских имен, что, возможно, свидетельствует о некотором процессе адаптации корейской диаспоры в условиях иммиграции.

Kо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улан-удэ, этническая идентичность,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устная история жизни, компоненты этнической идентичности, стратегический выбор

Короткий адрес: https://sciup.org/148180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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Текст научной статьи Этническая идентичность корейской диаспоры через устную историю жизни пожилого корейца

이 논문은 부랴티야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 데에 거주하는 한 고려인 노인의 구술생애사를 기반으로 연구 된 것이다. 그의 구술생애사는 2010 년 봄에 연구자에 채록되었으며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그의 구술생애사에 기반하여 부랴 티야 공화국에 거주하는 고려인 민족정체성의 일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자가 고려인의 민족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를 찾고, 고려인 민족정체성이 재구 성되거나 유지되는 과정을 살피기 위해 구술생 애사 연구방법을 사용한 이유는 구술생애사를 통해 각 개인의 삶에 드러나는 민족정체성의 구 성요소와 변화를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 기 때문이다 전봉수 2008).

물론 구술생애사가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객체로서 대표성을 가지지 못하다는 문제와 더 불어 연구방법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가 지금까 지도 제기되고 있지만 연구자는 구술자 개개인 의 인생과 생각이 분명한 역사적 산물이자 구조 적 구성물이라는 점과 구술에 의한 역사 또한 기 록적 역사만큼이나 존중 받아야 할 것이라는 점 에서 연구방법에 분명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윤 택림 , 함한희 2006).

물론 생애사를 구술한 고려인 리 알렉(가명, 이후 가명 사용)은 전체 러시아 고려인을 대표하 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고려인 개개인의 생애 가 구조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리 알렉의 생애는 한 개인의 생애이면서 고려인 문화를 말해주는 살아있는 문화의 부분인 것이다. 또한 생애사를 구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과장하

고 혼동하거나 사물을 오해하는 것에 관하여 일 부 연구자들이 구술생애사 연구방법의 객관성 문제를 제기하지만 연구자는 그들이 그들 나름 대로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 면 한 가지 사건에 대한 보편적인 ‘사실’ 외에 다 양한 측면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복수적 진실이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윤택림 , 함한희 2006).

본 연구는 고려인의 민족정체성에 관한 문 화인류학적 연구로, 구술생애사를 포함한 면접 조사가 주 연구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구술생애 사 조사는 구술자가 편의에 따라 러시아어와 고 려 말(리 알렉의 표현)이 함께 사용되었다. 고려 인 2 세인 구술자가 고려 말에 능숙하지 않았지 만 구술과정에서 고려 말을 사용하고자 노력하 였기 때문에 그의 구술생애사는 러시아어와 고 려 말이 함께 사용되었다.

리 알렉이 러시아 고려인을 대표할 수 없음 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고려인의 민족정체성 연 구를 위해 연구자가 그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 그가 현재 생존하고 있는 고려인들 중에서 비교 적 이른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양한 시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 만 고려인 민족정체성연구에 매우 중요한 1937 년도 고려인 강제이주를 경험했으며 강제이주 에 대한 기억을 잘 가지고 있다. 또한 비록 후방 이기는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집단지역에 서 자라면서 위대한 조국전쟁 (1941 년- 1945 을 경험했다. 이 두 사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러시아 고려인의 민족정체성의 형성과 변화에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연구자는 리 알렉을 구술자로 선택하였다. 둘째, 그가 중앙아시아에 서 러시아로 재 이주한 고려인이기 때문이다. 러 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대부분 재 이주 고려 인이나 재 이주한 고려인의 후세들이다. 현대 러 시아 고려인의 민족정체성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들의 재 이주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의 재 이주 원인이나 재 이주 과정을 살피는 것은 현대 고려인의 민족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안(延安) 리(李)씨인 리 알렉은 현재 러시 아 연방 부랴티야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 거 주하고 있으며 1931 년 러시아령 문강(러시아명 바라바쉬,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Хасанский район, село Барабаш, нас т оящее название реки «Монг у -гай», что в переводе с китайского означает «Спящий тигр») 에서 태어났다(위키피디아). 1888 년 조선의 금강산 지역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 리 송기(가명, 이후 가명 사용)는 12 살이 되던 1900 년도에 문강으로 이주했으며, 문강에서 일 이 없자 그 해에 다시 비킨 (Бикин, посёлок Бикин

Бикинского района Хабаровского края 으로 이주 했다. 비킨에서 돈을 벌은 리 송기는 ‘서방 가기 위해’ (같은 민족인 고려인 처자와 결혼하기 위 해) 다시 문강으로 돌아왔다. 당시 문강에는 조 선인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 여자 를 찾아 ‘서방 가기 위해’ 문강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문강에서 ‘서방’을 간 이 송기는 첫째 딸 꽃분이와 둘째 딸 슈라 그리고 큰 아들 동철이를 낳았다. 문강에서 이송기의 넷째로 태어난 아들 이 구술자인 리 알렉이었다. 이주 1 세대 고려인 인 이 송기는 문 마리나(가명, 이후 가명 사용)와 결혼 한 후 문강에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 중 첫째와 세째 아이에게는 조선식 이름을 주었고 둘째와 넷째에게는 러시아식 이름을 지어주었 다. 그러나 첫째인 꽃분이가 어린 나이인 세 살 에 죽자 그 이후로는 모두 러시아식 이름으로 자 녀들에게 주었다. 리 송기의 부인이자 구술자의 어머니인 문 마리나 역시 자신의 조선식 이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주변인들 사이에 서는 문 마리나로만 불리었다.

연구자: 엄마의 성함은 어떻게 되지요?

구술자: 엄마? 문 마리나. 고려이름이 있어. 그러나 문마리나 야코비치 야코브나.

연구자: 그러면 당신의 엄마는 고려이름이 있었나요?

구술자: 있었어. 그런데 나는 몰라.

연구자: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 엄마 이름을 마리나라고 불렀기 때문인가요?

구술자: 응, 마리나, 마리나. 엄마, 마마하지 이름은 안 하니까. 그래서 모르지.

연구자: 여권에는 고려이름이 써 있었나요? 아니면 러시아 이름이?

제보자: 서류에는 문 마리나 야코브나라고 썼지. 서류에는 그렇게 썼지.

초기 이주자로 고려인 1 세대였던 리 송기는 자녀들에게 조선식과 러시아식 이름을 섞어서 주다가 첫째인 꽃분이와 동철이가 어린 나이에 죽자 그 다음에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모두 러시 아식 이름을 주었다. 이민자 가족이 후세들에게 이름을 주는 방식은 민족정체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어로 지어진 이름의 문화 적 의미를 넘어 이름을 통해 민족문화적 정체성 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내 다른 지역 보 다 한국과의 교류가 비교적 많은 사할린 고려인 의 경우 자신들의 자녀들( 3-4 세대)의 이름을 조 선식 또는 한국식으로 주는 경우가 다른 지역 보 다 많은데 이는 러시아 사회에 동화되어 러시아 시민으로 살면서 동시에 한민족이라는 민족정 체성을 ‘이름 짓기’를 통하여 전달하고 있기 때 문이다. 이처럼 자녀들에게 조선식 또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 전달하는 것은 민족정체성의 전달 이나 유지와 상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어로

만들어진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연속된 전통을 유지시켜줌으로 집단적 귀속감을 결정하는데 매 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강정원 2005).

리 알렉의 부모는 자신들의 일곱 자녀들 중 첫째와 셋째에게만 조선식 이름을 주었지만 이 들이 모두 죽자 이후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오직 러시아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이민자이면 서 사회적 약자인 자신들의 자녀들이 러시아 사 회에서 준 러시아 시민으로 대접받고 사회에 적 응할 수 있도록 해준 배려이자 조선식 이름을 가 진 두 자녀의 죽음이 다시는 다른 자녀들에게 이 어지지 않게 하고자 했던 의도로 풀이된다. 더불 어 민족정체성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인 ‘이 름 짓기’의 방식이 조선식에서 러시아식으로 변 화된 것은 이주 1 세대인 리 송기가 조선식 ‘이름 짓기’를 더 이상 민족정체성의 중요한 요소가 아 닌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는 이민의 사회정치 적 필요에 따른 민족정체성 구성요소의 선택과 버림에서 조선식 이름을 버리고 러시아식 이름 을 선택함으로 러시아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 되고자 했던 의도로 분석된다.

조선식 이름을 버리고 러시아식 이름을 선택 한 것이 이들의 민족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하기 는 하지만 고려인 민족정체성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민족정체성 구성요소 의 선택과 버림에서 이해될 수 있는 민족 정체성 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Cohen 1969, 윤형숙 외 2000). 그리고 이는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상 상된 이미지라는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이해될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 2002).

리 송기의 부인이자 이 알렉의 어머니인 문 마리나 역시 조선 식 이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가족들과 지인들 사이에서 오직 러시아식 이 름인 ‘마리아’로만 불리었다. 이 역시 고려인 이 민자들의 러시아 사회 초기 적응에 대한 선택과 민족정체성 재구성으로 이해 될 수 있다. 그 소 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에서 민족주의가 발흥 하자 카자흐스탄 고려인들 역시 민족정체성의 구성요소들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 는 이런 맥락에서도 동일하게 이해 될 수 있다( 윤형숙 외 2000).

리 알렉은 생애사를 구술하는 과정에서 유독 자신의 혈통과 대(代)에 대해 강조를 했다. 면담 을 시작하면서 연구자가 리 알렉에게 이름을 묻 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술자: 대(代)가 있어. 우리 아버지, 열 일곱 째로 내려왔지. 우리 아버지, 열 여섯째로 내려 왔지. 그 다음에 나도 맏아들이 아니지 아 버지께. 맏아들이 있었지. 내 형이. 그래서......... 내 말 알아들었소? 내 위에 형님이 있었지. ‘

대(代)’라는 것을 알아? 대라는 것이 그렇 지. 첫 번째 아버지가 있겠소? 그 아버지 아 래로 내려온 게 우리 아버지가 십육 대, 그 다음 에 내가 열 일곱째이지. 그 다음에 우리 아 들이 열여덟 대이지. 쟤가 열 아홉째이지. 그렇 게 대 내려오지. 대 있고.

구술자의 부인: 연안(延安) 리(李).

구술자: 우리 연안 리가 그래. 대가 아직 들 었지 이때까지. 자가 그것 끊지 말고 서방을 고려여자에게 가야 되지. 그런데 저 놈 새끼, 서방 [장가를]아니가 스물여덟 살이요. 그러니[ 다른 민족여자에게]서방 간다고. 그래 내가 죽 으면 간다고. 내 죽으면 지 아무데가[다른 민족여자에게]서방 갈 수 있지. 그렇지.

자신을 고려민족이라 생각하는 리 알렉에게 대(代)와 혈통(血統)의 보존은 매우 중요한 것이 었다. 리 봉기는 자기정체성을 설명하는 과정에 서 자신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의 ‘보니’( 본관, 本貫)와 ‘대’(代)이었다. 친족 집단인 ‘연안 리’를 ‘우리’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대 가 아직 들었지’라는 표현에는 ‘우리’라는 집단 을 계속 이어가야만 하는 의무의식이 녹아 들어 져 있다. 그런데 이 대는 결혼을 해서 자식을 생 산한다고 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민족 인 고려사람에게 ‘서방을 가’서 자식을 생산해야 만 이어지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 이 송기 역시 비킨에서 돈을 벌 고 성인이 되었지만 배우자를 찾기 위해 고려인 집단촌이 형성되어 있는 문강으로 다시 이주를 했다. 이를 알고 있는 리 알렉은 민족과 연안 리 의 집단정체성의 유지를 이해서는 반드시 고려 사람과 결혼해서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술자: 비킨으로 오니까는 고려사람이 다 갔지. 그래. 문강으로 왔지.

연구자: 아 결혼하려고.

구술자: 그래 거기 가서 서방을 갔지.

연구자: 아, 고려여자들을 찾기 위해서요?

구술자: 어, 그래..........

친족집단인 ‘연안 리’로 대변되는 종족 또는 민족의 전달과 유지는 고려 사람끼리의 혼인으 로 이어지지만 장자가 우선이며 절대로 딸을 통 해서는 이어지지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 는 우선적으로 고려여자에게 장가를 가야 한다. 리 알렉은 자신의 손자가 러시아인 여자에게 장 가를 가기 위해 자기가 죽기까지 기다리고 있다 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이어오던 연안 리의 대는 끊기고 자연히 자기대의 고려인 정체 성도 끊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혈통과 대의 끊김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며 혈통을 기반 으로 이어 내려오던 연안 리의 정체성뿐 아니라 고려인 민족의 정체성의 끊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안을 지역이 아닌 시조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리 알렉은 대의 끊김과 더불어 시조인 연안 의 혈통도 종족의 혈통도 끊어지는 것으로 받아 들이는 듯 했다.

리 알렉에게 ‘연안 리’라는 종족( lineage) 의 정체성( identity) 은 대(代)로 여겨지는 혈통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전달된다. 종족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고려인 민족정체성( ethnic iden-tity) 은 혈통이 기반이다. 그 혈통은 장자를 중심 으로 이어지며 반드시 고려사람아내에게서 얻은 자녀를 통해서만 이어진다. 이는 고려인 민족정 체성의 구성요소 중 혈통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름을 물어본 연구자에게 자기이름을 대답 하기에 앞서 자기의 뿌리를 설명하던 리 알렉은 자기정체성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종족과 민족의 개념과 정체성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이 는 리 알렉 자신이 고려사람이라는 민족정체성 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세대를 통해 이가 잘 전달되기를 강하게 열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 진다.

Статья научная